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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17 나를 보내지 마 본문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0. 비슷하지만 다른 대용품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감마 계급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에서 소인과
이 책에서 클론과 비슷한 점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만들어진 인간 대용품이다.
비슷하긴 하지만 책의 전개와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1. 이 책, 왜 이리 짜증나는가?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이 장기 기증을 위함이고 그 역할을 다하면 생을 마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기껏 한다고 하는 것이 나의 근원자를 찾거나 집행유예를 요청한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집행유예를 요청하는 것도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걸었지만 그것도 규칙위반을 감수해야한다.
또한, 자아를 찾는 것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의 근원자를 찾으려한다. 만약 밖의 근원자를 찾았다 하더라도 나의 운명이 바뀌지 않을 터인데.
그럼 그 운명은 누가 지워준 것이며 그 규칙이라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일까?
이런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알려진 운명과 규칙을 당연히 순응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당연한 질문을 하지않고 갑갑한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는 클론을 보면서
난 왜 이리 짜증나는가?
2. 이 상황 너무 익숙한데.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었다면 되돌아가야한다. 방향을 조금 튼다고해서 제대로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지워준 나의 운명을 그대로 순응하는 클론을 보면서 어딘지 모를 기시감이 떠오른다.
이건 뭐지?
어쩌면 그런 클론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맞아떨어지며
작가는 클론을 그린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우리는 누군가 지워준 운명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정한 규칙이 많은 부조리를 담고 있음에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 속에서 소소하고 작은 규칙위반을 가지고 자기위안을 삼지 않았는가?
나의 자아를 밖의 허상에서 찾고 있지 않았던가?
알에서 깨어나오지 못한 클론을 보면서 그러한 나를 보면서
클론이라는 은유를 통해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러기에 클론에 대한 짜증은 나에대한 짜증이었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은유를 통해 그런 우리를 비판하려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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