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책을 잡았을 때
잠깐, 이 책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안 읽은 것 같기도 하네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1부 소인국(릴리퍼드)
2부 대인국(브롭딩낵)
3부 날아다니는 섬(라퓨타)
4부 말의 나라(후이눔의 나라)
물론 나라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걸리버가 어느 나라를 여행했는지는 알았고 그 곳에서 있었던 일도 대충은 알고 있는듯 했다.
그럼 읽은 거였던가?
물론 동화책으로 소인국과 대인국은 읽은 것은 확실한데... 라고 미심쩍어 하면서 책을 펼쳤다.
역시나 나의 기억 속 흔적으로의 걸리버 여행기와 다시(?)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많이 달랐다.
그 중 4부 후이눔 이야기는 내 생각과 많이 달랐고 그 다름은 예전에 안 읽고 전해들은 잘라진 정보 해석 때문인지 읽었지만 지금 현재의 나와 그때의 나가 다름때문인지는 모르겠다.
1,2,3부와 4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걸리버는 1,2,3부는 어느 정도 그 나라에 적응하지만 기어코 탈출한다. 자의적으로 떠난다. 하지만 4부 후이눔의 나라에서 걸리버는 평생 그 곳에 살기를 원했지만 쫓겨난다.
그리고, 후이눔의 나라의 경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평생 동경하고 후이눔과 같은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후이눔의 나라를 유토피아로 본 것일까?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후이눔은 완전한 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싸움도 없고 덕이 충만해 있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악'이라는 단어가 없다.
반면에 인간의 몸을 한 야후는 탐욕이 넘치며 혐오스럽다.
그리고 후이눔의 나라에서 야후를 길들이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걸리버 여행기가 대표적 풍자문학이어서 인간 사회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풍자로 4부가 이루어진줄 알았다.
그런데, 한 대목에서 갑자기 꽂힌다.
논쟁이 된 문제는 야후가 지구상에서 말살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찬성하는 의원 중 하나는 강력하고 중요한 주장을 여럿 내놓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야후는 자연이 낳은 것 중 가장 더럽고 역겨우며 흉측한 동물이다. 그렇기에 가장 난폭하고 길들이기 힘들며 심술궂고 사악하다. 또 지속적으로 감시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후이늠 소유의 암소 젖을 몰래 빨아먹거나, 그들의 고양이를 먹거나, 혹은 그들의 구리와 풀을 밟아 뭉갤 것이며, 이 외에도 수천 가지의 터무니없는 짓을 할 것이다. (p395)
어? 덕의 상징이고 악이라는 단어도 없는 후이눔이 아무리 덜 떨어지고 탐욕스럽다고 하더라고 야후라는 종이 말살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단지 우유를 훔치고 풀을 밟는다는 이유로...
그러고보니
과거 구제역 사건에서 단지 구제역이 걸렸을 가능성이 조금 있다는 이유로 구덩이를 파고 산채로 돼지를 집어넣었던 사건이 오버랩도 되고
종종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인종 청소/대학살도 생각난다.
과연 후이눔이 이성과 덕의 상징이며 '악'이라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순수한 종족일까?
생각해보니 조너선 스위프트가 인간을 비유한 것이 야후가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후이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